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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얼빠진’ 나라의 ‘얼빠진’ 대학들

작성일 : 2014-04-21 11:53
조회수 : 11
작성자 : admin

제701호
‘얼빠진’ 나라의 ‘얼빠진’ 대학들
김 동 춘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밖에서 보는 사람들은 요즘 한국 몇 대학들이 외국 기관이 평가하는 대학 서열에 올라가고, 학생들도 과거에 비해 열심히 공부하고, 교수들도 외국 학술지에 논문도 많이 내고 하니까 이제 한국대학도 세계 수준으로 발돋움하고 있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강의 충실도, 장학금, 기숙사 시설 등 교육 측면에서 과거에 비해 분명히 좋아진 점은 사실이다. 그런데 수치가 보여주는 변화 발전에도 불구하고, 막상 속을 들여다보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학생은 취직 준비만, 교수는 살아남기 논문만 ?

  학생들은 열심히 공부하지만, 전공, 학술서적 보는 학생 거의 없고, 오직 취직 준비에 목매달고 있다. 교수들의 논문 편수 많아졌지만, 주로 미국의 민간기관이 만든 SCI, SSCI급 잡지에 실리기 위한 논문이 관심이다. 즉 교육과 연관된 연구나 사회가 요구하는 기초 과학, 이론연구와는 별 관계없는 ‘살아남기’ 위한 논문쓰기 작업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교육부가 유도하는 영어 강의 비율 맞추기 위해, 인문학까지 영어로 강의해야 하고, 학생과 교수들이 안 되는 영어로 강의실에서 의사소통하는 희극이 연출된다. 교육부는 청년실업 문제를 대학에 떠넘겨 중위권 이하의 대학은 ‘의자 놀이’, 즉 교육보다는 학생 취업률에 사활을 걸고 있다. 교수 연구자 생산 기능을 상실한 국내 대학원은 일부 한국학을 제외하고는 제대로 운영되는 곳이 별로 없다. 요즘은 영어로 강의할 수 있어야 교수가 될 수 있으니, 국내 대학원에서 공부해서 장차 학계의 주역이 되는 일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 되었다.

  수년전 중앙대학교를 인수하여 전교생에게 ‘회계학’을 필수로 하고, “취업 안 되는” 학과를 폐지하는 등 대학을 기업식으로 운영하는 전범을 보인 박용성 회장은 “대학이 학문하는 곳이라는 것은 옛날이야기이니, 기업에 필요한 인재를 배출해야 한다”고 한다. 사실 그가 말했듯이 대학이 더 이상 상아탑은 아닌 것도 사실이고, 대학 교육이 기업 환경 변화에 부응하는 현장 교육 중심으로 가야하는 것도 어느 정도는 맞다. 이공계는 특히 그렇다. 영국이나 미국의 경우는 물론이고 보수적인 독일 대학도 점차 경쟁 원리를 도입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세계 여러 나라, 특히 대학을 공공영역이 아닌 ‘교육 상품’의 공급처로 보는 사립대학 중심의 미국에서도 대학을 기업의 사내 직업훈련소처럼 운영하는 종합대학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게다가 세계 100위나 300위 안에 들어가는 데 성공한 한국의 ‘일류’ 대학은 세계의 다른 대학과 달리 여전히 연구 기능이나 학자, 전문가 생산 기능이 매우 약한, 사실상 ‘학부중심 대학’에 머물러 있다. 한국의 ‘일류’ 대학은 언제나 입학생 수능성적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지, 교육과 연구의 질을 통해 인정받은 적이 없다. 교수진, 교재, 강의를 위한 이론이나 개념은 미국에서 수입하고, ‘간판’이 필요해서 온 학부생들에게 번역된 지식을 전달하는 점에서 우리 대학은 개발독재 시절이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교육자가 교육과 학문의 근본을 부인해선 곤란

  이렇게 보면 박용성 회장의 대학운영 노선은 ‘주변부 신자유주의 국가’의 ‘주변부 대학’의 현실을 아주 정확하고 솔직하게 드러내 주고 있는 셈이다. 조선인들은 ‘전문대학’에서 기술적 지식만 학습하라는 일제의 고등 교육제도나 교육관은 오늘 한국의 교육부나 대학을 인수한 기업에 의해 다른 방식으로 요구되고 있을 따름이다. 좀 과장하면, 한국어는 학문 언어가 되지 못하고, 국가나 사회의 장기 비전은 연구나 교육의 소재가 되지 못하고, 교수는 공부 자체가 좋아서 찾아온 학부생이나 자기 학문을 이어갈 대학원생 제자를 찾기 어렵다.

  교육부는 몇 대학을 “주인에게 돌려주자”고 오래 전 도저히 대학을 운영할 자격이 없다고 퇴출되었던 구 비리재단을 복귀시켜, 몇 대학은 분규로 지새고 있다. 오늘 “‘주인’이 확실한” 여러 ‘일류’ 대학들의 건물은 점점 화려해졌고, 대학평가에서 서열도 올라가고 있다. 이들 ‘엄한 주인’ 밑에서 논문 숫자 올려야 하는 교수나, 생존의 벼랑에서 곡예를 하는 시간강사들이나, 한국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학부의 스펙과 미국 유명대학의 석․박사 학위를 받아와야 하는 학생들이나, 모두가 ‘얼빠진’ 나라, ‘얼빠진’ 대학의 노예 군상일 따름이다. 이런 대학 현실을 두고서, 수치만 보고 대학의 국제 경쟁력이 높아졌다고 좋아할 수 있을까?

  대학의 혁신이나 세계화도 필요하고, 영어 강좌도 확대되어야 하지만, 기본이 된 나라라면 교육을 업으로 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교육과 학문의 근본을 부인하는 일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