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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배려의 두얼굴 / 한번 생각해 봅시다.

작성일 : 2015-06-11 18:02
조회수 : 19
작성자 : admin
배려의 두 얼굴

박 원 재(한국국학진흥원 수석연구위원)

지난달 말 〈21세기 인문가치포럼 2015〉가 안동에서 열렸다. 유교를 기반으로 하는 동아시아 전통인문정신으로부터 21세기가 필요로 하는 인문가치를 발굴·조명하기 위한 목적에서 개최되는 국제포럼이다. 지난해 창립포럼에 이어 두 번째로 열린 올해 포럼의 주제는 ‘공감과 배려’였다. 소통 부재로 갈수록 각박해져 가는 우리네 삶의 현주소를 되돌아보고 더불어 행복할 수 있는 조건을 모색해보자는 취지이다. 과분하게 포럼 조직위원회의 말석에 이름을 올리고 있어서 전체 진행과정을 가까이서 살펴볼 수 있었다.

베풀었는데도 쌍방이 불행해질 수 있어

올해 포럼에서 가장 많은 눈길을 끈 것은 대중참여 세션이었다. 학술행사 중심으로 열려 다소 딱딱했다는 평가를 받았던 지난해 포럼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새로 추가된 부분이다. 가족간의 공감과 배려에 초점을 맞추어 영화콘서트와 토크콘서트, 북&뮤직콘서트 등 다양한 형식으로 진행되어 참가자들의 큰 호응을 얻었다. 특히 가족을 주제로 한 시와 음악을 소재로 진행된 북&뮤직콘서트는 세 시간 동안 쉬는 시간 없이 진행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근 4백여 명에 이르는 참가자들이 거의 자리를 뜨지 않고, 때론 환호로 때론 박수로 때론 눈물로 공감하는 성황을 이루었다.

그런데 정작 개인적으로 그야말로 격하게 공감한 것은 이런 프로그램들보다 둘째 날 저녁, 포럼 주최측 대표가 공식 환영만찬에서 행한 만찬사 내용이었다. 80대 중반을 바라보는 그분은 얼마 전 회갑을 맞은 딸에게서 들은 말에 대한 소회를 들려주었다. 내용인즉슨, 회갑연 자리에서 딸이 어린 시절 자신이 정작 필요로 할 때 어버지는 늘 옆에 없었다고 회상하더라는 것이다. 이 말을 듣고 그분은 깜짝 놀랐다고 했다. 사업 등으로 늘 바쁜 일상을 보내긴 했지만 그래도 자신은 가급적 아이들과 많은 시간을 함께 하려고 노력했다고 생각하고 있던 터라 전혀 의외였다는 것이다. 누구보다도 가정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이를 전파하는 데 지금도 앞장서고 있는 분인데, 60이 넘은 딸로부터 그런 소리를 들었을 때의 심정은 어땠을까? 어쩌면 훗날 내 이야기가 아닐까 하는 상념과 함께, 순간 가수 이소라가 부른 〈바람이 분다〉의 한 소절이 떠올랐다. "사랑은 비극이어라. 그대는 내가 아니다. 추억은 다르게 적힌다.” 뜬금없는 생각인가?

우리는 살면서 많은 사람을 사랑하고 배려한다. 아니 그렇다고 생각을 한다. 하지만 그 가운데 상대가 진정으로 원한 배려는 얼마였을까? 누구나 자식을 사랑하고 또 사랑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가 베푼 그 사랑 중에서 과연 아이가 진정으로 받고 싶어 했던 사랑은 얼마였을까? 『장자(莊子)』「지락(至樂)」편에 나오는 우화이다.

옛날 바닷새 한 마리가 노(魯)나라 교외에 내려앉았다. 노나라 군주는 이 새를 맞이하여 종묘에서 술을 베풀고 순임금의 음악인 구소를 연주하여 즐겁게 하며, 소·돼지·양을 잡아 대접하였다. 그러자 새는 눈이 휘둥그레지며 근심에 잠겨 한 점의 고기도 먹지 못하고 한 모금의 술도 마시지 못하다가 삼일 만에 죽고 말았다. 이는 노나라 군주가 자신을 보양하는 방식으로 새를 보양했지 새를 키우는 방식으로 새를 기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바닷새를 위해 베푼 노나라 군주의 진심 어린 배려는 불행하게도 바닷새의 죽음으로 귀결되었다. 그리고 단언컨대 이 일로 노나라 군주 또한 큰 상심에 젖었을 것이다. 결국 수혜자는 아무도 없고 베푼 이도 베풂을 받은 이도 모두 불행에 빠지는 결과만 초래한 것이다. 베푸는 이와 베풂을 받는 이 쌍방의 행복을 지향하는 것이 배려일진대, 이는 분명히 아이러니이다. 이를테면, ‘배려의 역설’인 것이다.

상대의 입장에서 베풀어야

배려의 역설이 발생하는 원인은 당연히 베푼 자에게서 찾는 것이 순리이다. 상대의 입장이 아니라, 자신의 입장에서 상대에게 필요하다고 생각한 것을 베풀었기 때문이다. 이렇듯 전도된 배려의 결과는 항용 당혹감이거나 배신감으로 귀결됨은 수많은 시행착오를 통해 우리가 경험한 대로이다. 그렇다면 이런 역설을 발생시키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유학의 배려윤리를 대표하는 『논어』의 ‘충서(忠恕)’에 대해 주희는 마음을 먼저 ‘보편적 이치[天理]’로 남김없이 채우고[忠] 이를 남에게 베풀어나가는[恕] 것이라고 풀이했다. 하지만 다산은 이런 해석을 반대했다. 그 ‘보편적 이치’가 결국은 ‘보편적 기준’이 될 것임을, 그 결과 배려하는 사람의 기준 속으로 배려받는 사람을 구속시키게 될 것임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대신 다산은 ‘충’을 명사가 아니라 형용사로 풀이하여 ‘진정어린[忠] 베풂[恕]’으로 ‘충서’의 의미를 단순화했다.

배려는 내가 베풀고 싶은 것이 아니라 상대가 필요로 하는 것을 베푸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의 기준을 절대화하고 배려받는 이의 삶의 미래에 대한 청사진을 제멋대로 그리지 말아야 한다. 이런 점에서 배려는 어쩌면 망설임의 다른 말일지도 모른다. 비록 좋은 뜻에서일망정 내가 내미는 손이 혹여 상대에게 상처가 되지는 않을까를 걱정하는 망설임. 너를 위해 내가 얼마나 희생하는데, 당신들을 위해 우리가 마련한 보상금이 얼만데 하는 식의 배려는 결국 ‘바닷새’뿐만 아니라 ‘노나라 군주’의 삶까지 황폐화시킨다. 이는 그에 대한 배려는커녕 그와 나 모두에게 가해지는 폭력일 뿐이다.